[김동길 박사]나이 때문에 밀려난다

사설/칼럼 / 열린의정뉴스 / 2021-06-09 14:10:09
▲ 김동길 박사
[열린의정뉴스 = 열린의정뉴스]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공연히 우겨대면서 나이를 무시하고 살아야 한다는 자들이 가끔 있다. 그런데 내용을 알고 보면 숫자에 관심이 없는 척 할 뿐인 경우가 많다. 겉으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말은 할 수 있지만 마음으로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나는 내가 구십이 넘었다는 사실을 두고 긴장된 하루하루를 산다. 왜 그런가. 나이 때문에 탈락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여기저기에 벌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의 나이의 근거가 각자의 목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 오래다. 외형의 변화도 그렇지만 내적으로 목 안에서도 노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

이 시대의 미인으로 소문났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자기 목이 늙는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문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서양 미인의 목이 긴데 그 길고 긴 목 둘레가 노쇠해졌다는 완연한 사실을 다른 방법으로 막을 길이 없다. 동양인의 목은 서양인의 목처럼 길지는 않지만 동양인의 노년도 목에서 시작되고 목으로 끝난다.

나도 내 목둘레가 보기 흉할 만큼 쇠잔한 사실을 느끼고 중국의 선비 주희와 더불어 “오호노의 시수지건(아 나 이제 늙었으니, 이것이 누구의 허물인고)”을 읊조린다. 물론 인간의 허물이 아니다. 나이 들면 누구나 다 목의 살갗이 시들시들하여 쪼그라지는 것을 아무도 못 막는다. 나는 목소리 하나를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구십이라는 노경에 접어들었는데 한평생 자랑하던 내 목소리가 간 곳 없고 나이 때문에 힘이 없어진 내 목에서는 내가 듣기 좋아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예전에는 노래도 자주 불렀다. 요새는 노래를 부를 생각도 못 한다. 영시나 한시를 암송하는 것도 이젠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아직도 젊어서 암송한 시를 하나도 잊어버리진 않았지만 내 목에서 나오는 나의 마음의 노래가 예전처럼 들리지 않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이런 현상은 “아예 젊은 사람들과 경쟁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라고 시들어가는 내 목이 나한테 경고를 해 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런 경험으로 내가 알게 된 한 가지 지혜는, 내 목의 실태를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무슨 일에도 젊은 사람들과 경쟁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게 됐다는 것이다. 내가 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나의 분수를 아는 것이다. 경쟁을 안 하면 패배의 쓴 잔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 나는 이런 조그만 지혜를 가지고 아무와도 경쟁하지 않고 나의 노년을 조용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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