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참전 연합국 친선협회 류병추이사장 인터뷰

사설/칼럼 / 최계식 기자 / 2023-03-07 16:30:51

장사리 전투는 근대사의 아픈 현실인 6.25당시 인천상륙작전 (1950년 9월15일)을 성공하기 위한 기만전술로 대부분 14~17세 나이의 학도병으로 구성된 소년들로 1950년 8월21일 밀양창고에서 훈련 9월12일 부산 육군본부 정일권(소장) 참모장 앞에서 사열등 2주간 주간의 짧은 훈련만 받고 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그 전투에서 생존해 계신 류병추이사장과 유가족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사단법인의 목적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UN 연합국 16개국 및 의료지원국 5곳에 전후복지 지원등 전쟁 당시 승전 및 숭고한 뜻을 전달하고 보은하는 뜻을 갖고 장사기 상륙작전을 기리기 위해 매년 9월13,14일 경북 영덕 장사리 해변 일대에서 전승기념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6.25전쟁 교착상태 타개를 위한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기 위한 양동작전으로서 인천상륙작전을 하루 앞둔 1950년 9월 14일 감행된 작전으로 장사상륙작전의 성공이 한국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장사상륙작전은 참전병 772명.. 작전명령 174호를 수행하기 위하여 해군 수송함 LST 문산호에 몸을 싣고 9월 13일 부산항을 출발하여 다음날인 14일 새벽 5시경에 경북 영덕 장사 해변에 도착하여 이 작전으로 139명의 전사자나 부상 92명이 발생하여 39명이 구조선에 오르지 못하고 포로로 남는 등 많은 희생을 감수했다 군번도 계급도 없는 학도병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작전 성공률 5000/1 이라고 평가 받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주요 공적은 적군 보급로 차단과 포항, 영천 방향 국도 전면 차단 적군 교량 및 마비 후방활동 등 적 2개 연대 전차 4대 유인하여 격퇴했습니다. 미국 군사전문가들 조차도 성공확률 5000/1로 정치며 만류했던 20세기 마지막 상륙작전인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게 만든 장사상륙작전을 경주, 부산을 사수하고 서울을 수복 탈환 (1950년 9월 28일) 6.25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 했습니다.


앞으로 외교부 및 UN참전국과 더불어 세계포럼 및 평화기금조성 및 기부금 모금 활동 등으로 개발도상국및 전쟁국가에 기부를 통하여 한국의 위상을 알리고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참전 유공자 및 유가족에게 보은 활동을 우선시 하겠습니다.


*6.25참전국(16게국) 및 의료 지원국(5개국) 현황
아메리카 3개국: 미국, 캐나다 콜롬비아 유럽 7개국: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 그리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튀르기예(터키) 아시아 4개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타이)
아프리카 2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이디오피아 의료지원국: 이탈리아,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인도


2022년 12월 16일 UN 친선 교류 우호의 밤 개최(용산 전쟁기념관2층)
 


장사 상륙작전의 영웅들은 군번없는 학도병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중 가장 치열한 작전을 벌인곳은 장사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 다부동전투,철의 삼각지 전투,낙동강전투 등이었는데 특별히 기억 해야 할 전투로써 경북 영덕의 장사 상륙작전의 참전 학도병들은 14~17세의 어린 용사들로 훈련기간은 단2주에 불과했던 772명의 학도병이었고 그들은 유격대원이라는 호칭을 받았지만 군번은 받지 못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위해 군산 상륙 작전과 삼척 포격 등이 있었다.

※1950년 9월13,14일 장사상륙작전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1951년 1월4일 일사후퇴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체결

3년 1개월간의 전쟁으로 휴전협정을 맺었기에 전쟁은 잠시 멈추어 진 것이지 지금도 북과 대치 중이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6.25전쟁으로 희생된 장병들의 희생정신과 호국 충정을 우리 국민들은 잊어서는 안된다.

※ EBS 「이름없는 어린 용사의 비밀」 2014년6월26일 방영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2019년9월26일~ 5개월 상영
문산호 L.S.T. 복원 (3800억원) 2020년6월5일
(국내 유일의 바다 위에 건립한 호국전시관)
※보훈청에서 보훈부로 승격 2023년 3월2일


외벽 작전명 174호
잊혀진 영웅들

장사 상륙 작전
위대한 기억으로 모래톱에 묻힌 충혼을 찾아!


1950년 9월14일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서 벌어진 장사 상륙 작전은 낙동강 방어선을 공격하는 북한군의 후방을 차단하고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위해서 북한군의 분산과 보급로 차단을 막고 적들을 교란하기 위한 양동작전이었다.

당시 인민군으로부터 노획한 소위 아시보총이라 불렸던 소총과 모신나강 실탄 200발 수류탄 2개로 무장한 학도병 772명 이 인민군복을 입고 부산에서 출발한 문산호를 타고 성난 파도를 뚫고 9월14일 새벽에 장사 해변에 도착했지만 포격이 날아들고 태풍 케이지의 영향으로 배가 좌초되면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상륙하면서 학도병 1/4 정도가 사망과 부상을 당했다.

소대별로 지급된 소련식 기관총과 학도병 배낭에는 담요1장,우의한벌,건빵 두봉지,물에 타서 먹을 수 있는 쌀가루 한봉지 뿐이었다.
부대원 718명 선원 44명 통신부대원 8명 작전부대 참관부대장과 부관 포함하여 작전에 참여한 인원은 총 786명이었다.
그중 전사 139명 부상자 92명 북한군에 표면 잡혀간 포로는 39명이었다.
행방불명자가 다수였다.

장사상륙작전은 오랜 기간 비밀에 부쳐져 있다가 1997년 3월 6일 장사리 해변에서 작전 중 침몰했던 2700톤의 거대한 문산호가 갯벌에서 이름과 군번 없는 어린 용사들의 유해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학도병 유격대 위령탑
2020년 8월

 

[ⓒ 코리아 이슈저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