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박사]꽃샘

사설/칼럼 / 열린의정뉴스 / 2021-04-14 16:24:13

▲ 김동길 박사
[열린의정뉴스 = 열린의정뉴스] 누군가가 잘 되는 것을 방해하는 어떤 나쁜 세력이 있는 것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을 해치려고 마음먹은 때 아닌 찬바람도 있다. 꽃이 피려고 하면 기쁨의 미소를 지어야 마땅한데 샘을 내며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투정을 한다는 것은 온당치 아니하다. 벚꽃은 다 떨어지고 까닭 없이 찬바람이 분다. 간간 햇빛이 비치기도 한다.

대자연의 모습은 그러한데 나는 내가 가까이 알던 시인 천상병을 생각해본다.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하던 젊은이였지만 시대와 권력을 잘못 만나 고생에 고생을 거듭하다 오래 살지도 못 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기고 간 이 시 한 수가 오늘 내 가슴 속에서 은근히 노래한다.



귀천 (하늘로 돌아가리)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정치적 조작으로 이루어진 동백림 사건만 아니었어도 천상병은 그렇게 몸이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무서운 기관에 붙잡혀가 아이를 갖지 못 할 정도로 심하게 전기고문을 받았다고 말하곤 했다. 막걸리 한 잔을 먹기 위해 길에서 만나는 지인들에게 백 원이나 이백 원만 요구할 뿐이었다. 몸은 그렇게 망가졌지만 그의 속사람은 늘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면 표정이 일그러질 법도 한데 천상병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고 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의 사람이었다. 거창한 표현을 한다면 그는 ‘원수도 사랑’하였다. 내가 사는 이 세대가 지나면 개인적으로 천상병을 알던 사람들도 다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름다운 정신은 백 년 또는 이백 년 후에도 한국인의 가슴에 큰 감동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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