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구치소를 제집처럼"이라 쓰기 전에, 그 어른의 발자국을 보라.

사설/칼럼 / 최윤옥 기자 / 2026-09-18 08:49:25
▲코리아이슈저널 최윤옥 편집국장
[코리아 이슈저널 = 최윤옥 기자] 최근 언론이 "이만희 총회장이 9월에만 세 번 석방됐다"'구치소를 제집처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휠체어에 의지해 구치소 문을 나서는 아흔여섯 노인의 모습을 조롱처럼 그려낸 프레임이다. 그러나 기자의 펜은 사람을 비웃는 도구가 아니어야 한다. 그 노인이 누구이며, 왜 휠체어를 타고 있는지, 왜 종교계와 각계각층에서 그의 석방을 탄원하고 있는지 묻지 않은 채 제목만 요란한 기사는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

 

누가 "제집처럼" 다니는가 기사는 9월 세 차례의 일시 석방을 마치 특혜처럼 그렸다. 그러나 이는 법원이 판단한 '구속집행정지'. 중병을 앓는 피고인의 건강을 이유로 형사소송법에 따라 허용되는 절차이며, 법원이 건강 악화 사유를 심리해 인용한 결과다. 법이 정한 절차를 밟은 것을 두고 "제집처럼"이라 표현하는 것은, 법원의 결정을 정면으로 겨냥한 모욕적 수사이기도 하다.

 

문제의 본질은 거꾸로다. 이 총회장은 법원이 지정한 병원에서 'T12 부위 압박골절', 즉 허리뼈가 부러졌다는 진단을 받았고 그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안다. 척추 12번 흉추뼈에 생긴 압박골절은 고령자에게 회복이 더디고 통증이 극심한 중증 부상이다. 의료진은 시술이 필요하다는 진단까지 내렸다. 그런데도 병보석은 허락되지 않고 있다. 법원 스스로 구속집행정지 사유로 인정할 만큼 건강이 위중하다는 뜻 아니겠는가. 시술이 필요한 골절 환자를 석방했다 재 수감하고, 또 석방하는 것은 치료가 아니라 문책이다.

 

'제집처럼'이라는 비웃음은 여기서 더 참혹해진다. 제집을 드나드는 것이 아니라, 뼈가 부러진 몸으로 하루 종일 병원 진료를 받고 다시 감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아흔여섯의 고령에 휠체어가 없으면 거동조차 힘든 노인을 왜 지금도 구속 상태로 재판해야 하는가. 구속은 유죄 확정이 아니라 도망과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 때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수단이다. 수십 년간 공적 생활을 해온 96세 노인이 어디로 도망간단 말인가. 지난달 21일 보석 심문기일까지 열리고도 결론이 나지 않은 채, 골절된 몸이 악화될 때마다 석방과 재수감을 오가는 것 자체가 그에게 이중의 고통이라는 점을 기사는 외면했다.

 

이 땅이 잊지 말아야 할 발자국이 그 어른의 평화순방이다. 그 국가유공자 어른의 이름 석 자 앞에 붙는 수식어를 언론은 쉽게 잊는다. 이 총회장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조국을 지킨 6.25 참전 유공자다. 전우들이 눈앞에서 숨져가는 것을 지켜본 스무살 청년은, 그 후 평생 "전쟁 없는 세상"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국가보훈처가 참전 인정해 발급한 '국가유공자증'이 그것을 증명한다.

 

2012, 여든을 넘긴 나이에 그는 평화순방을 시작했다. 이후 32차례에 걸쳐 지구촌 곳곳을 누볐다. 관광이 아니었다. 전쟁종식 국제법 제정과 종교 간 화해를 위해 전·현직 정상과 종교 지도자들을 직접 만나 호소하는 행보였다.

 

그 평화의 일의 결실이 2014124일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나왔다. 40년간 유혈분쟁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낸 가톨릭과 이슬람 대립의 땅에서, 그는 양측 지도자를 한자리에 앉혀 민간 평화협정을 성사시켰다. 필리핀 정부와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이 공식 협상에서 진전을 이루는 실질적 계기가 됐고, 이후 방사모로 자치구 설립으로 이어졌다. 정부도, 유엔도, 수십 년 해결하지 못했던 분쟁지역에 평화의 물꼬를 튼 주인공이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노인이었다.

 

현지에는 그를 기리는 평화기념비가 세워졌고, 124일은 '평화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평화 외교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 분쟁의 상당수가 종교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문제의식 아래, 그는 종교를 하나 되게 하는 일에 착수했다. 각 종교가 함께하는 종교연합사무실을 열고, 경전을 펼쳐놓고 서로 비교 토론하는 '경서비교토론회''종교인대화의 광장'을 운영하며 종교 간 벽을 허물어가고 있다.

 

나아가 현행 국제법이 전쟁을 실질적으로 막지 못한다는 한계를 보완하고자, 세계적 국제법 전문가들로 '국제법 제정 평화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2016, 전쟁종식과 지속가능한 평화를 이루기 위한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 1038'을 완성해 세계에 공표했다. 무력 사용 금지, 군축, 분쟁의 평화적 해결, 종교의 자유와 평화문화 전파까지 담은 이 문서는, 전쟁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국제법의 허점을 메우자는 뜻에서 시작됐다.

 

지구촌 어느 나라가 이런 인재를 두고 그를 수감된 노인 취급만 하는가. 세계가 '평화의 아버지'로 부르는 대한민국의 참전 유공자를, 대한민국의 언론이 '구치소를 제집처럼 다니는 노인'으로 조롱하는 것은 국가의 체면이고 언론의 수치다.

 

탄원하는 목소리들을 외면하지 말라. 지금 종교계와 각계각층에서는 이 총회장의 구속재판 부당함을 알리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910일에는 전국 235개 시민사회단체가 "법의 근본은 생명 존중"이라며 병보석 허가를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97일에는 6.25참전유공자회 서울지부가 나서 전우이자 참전유공자인 그의 병보석을 허가해 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평화의 사자의 병보석 석방을 촉구하는 탄원서가 이어지고, 1인 시위가 벌어지고, 병보석을 요구하는 기고문이 쏟아지고 있다. '법원이 지정한 병원'의 소견서가 나왔음에도 병보석이 허락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이 움직임은 더 커지고 있다사회 각층이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기자수첩을 펼치는 언론이라면 물어야 한다. 재판에 부쳐야 할 사안을 왜 구속 상태로 심리하는가. 법원 지정 병원에서 압박골절 진단과 시술 필요 소견이 나온 96세 참전유공자의 재판은 건강을 담보로 한 심리가 아니라, 치료를 받으며 불구속 상태에서 이뤄지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허리가 부러진 노인을 구치소에 계속 묶어두는 것이 '법의 실현'인가, '형벌의 선집행'인가. 정치권·사법부가 정교유착을 문제 삼는다면 그 잣대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원칙에 겨눠져야 공정하다. 오직 한 노인의 부러진 몸과 명예에만 법의 무게가 실린다면, 그것은 정의라 부르기 어렵다.

 

펜은 칼보다 무섭다. 허리뼈가 부러진 채 휠체어를 타고 감옥 문을 나서는 노인을 비웃는 한 줄의 제목보다, 그가 평생 걸어온 평화의 발자국을 확인하고 체크해보라. 그 일도 언론이 할 일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국내외 종교인과 단체와 세계 각국에서 그의 병보석과 석방을 기다리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언론은 이제라도 취재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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