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생명의 길
- 사설/칼럼 / 코리아 이슈저널 / 2026-09-19 21:35:51
성도의 참 신앙은 말씀을 삶으로 증명하는 사람
내 선택으로 드러나는 내 신앙의 모습
나는 누구인가, 내 안의 성분을 살피자
내 선택으로 드러나는 내 신앙의 모습
나는 누구인가, 내 안의 성분을 살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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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한국언론사협회장 주동담 |
[코리아 이슈저널 = 코리아 이슈저널]
성도의 참 신앙은 말씀을 삶으로 증명하는 사람
신앙생활을 한다면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이때 우리는 많은 말씀을 배우고 기록한다. 초·중·고 과정을 거치며 성경의 흐름과 하나님의 뜻, 천국과 지옥, 구원과 심판에 대해 깨닫는다. 그러나 배움이 깊어질수록 반드시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나는 배운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참 신앙은 말씀을 아는 데 있지 않고, 그 말씀을 믿고 지키는 데 있다. 종교가 하나님의 뜻과 가르침이라면, 신앙은 그 뜻을 깨달아 실제 삶에서 순종하는 것이다. 말씀을 들을 때는 “이렇게 살아야겠다” 다짐하지만,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이전의 생각과 습관으로 돌아가 버린다면 그 말씀은 아직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 것이다. 말씀은 적어 두는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보이는 스승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말씀이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 억울하게 하는 사람,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을 보면서 선한 마음을 지키기란 어렵다. 때로는 대적자를 향한 분노가 먼저 올라오고, 내가 직접 갚아 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러나 바로 그때 우리의 신앙 성분이 드러난다.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마음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용서와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예수님은 핍박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순간에도 자신을 해하는 이들을 저주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스데반집사도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 자신을 돌로 친 사람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아 달라고 간구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며, 우리가 닮아가야 할 참 신앙의 모습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세상 사람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를 어렵게 하는 사람에게도 선을 행하고, 축복하며, 용서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분을 닮아 가는 사람이다.
내 선택으로 드러나는 내 신앙의 모습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선을 선택할 수도 있고 악을 선택할 수도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갈 수도 있고 자기 생각과 욕심을 따라갈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강제로 모든 사람을 선하게 만드시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원하는 사랑과 순종을 원하신다.
부모가 자녀에게 억지로 인사를 시키고, 강압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하는 인사와 사랑해서 달려와 안기는 자녀 모습은 다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공포와 강요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기쁨으로 맞이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은 다른 누구의 선택도 아닌 나 자신의 선택이다.
천국과 지옥 역시 결국 각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왔는지에 따라 다다르게 되는 결과다.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 선과 악의 길을 알려 주신다. 그러나 그 길을 걷는 것은 사람 자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천국에 보내 주시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늘 내 말과 행동이 과연 천국에 합당한 모습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천국을 소망하는 마음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다. 빌립보서 2장13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 안에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좋은 집, 좋은 차, 돈과 성공이 인생의 가장 큰 소원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말씀을 통해 영생과 천국의 가치를 깨달았다면, 우리의 가치관은 달라져야 한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내 삶의 가장 큰 기준이 되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내 안의 성분을 살피자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어떤 생각과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가이다. 하나님께 속한 성분이 내 안에 더 많은지, 아니면 미움과 질투, 교만, 욕심과 같은 마귀의 성분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특히 하나님의 사명을 맡고 사람을 이끌거나 판단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더욱 자신을 살펴야 한다. 누군가가 칭찬받거나 사랑받는 모습을 볼 때 불편한 마음이 들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되는 것을 보며 시기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마음을 합리화하거나 숨기기보다, “왜 내가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가?”를 말씀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을 보아야 한다.
질투와 미움은 처음에는 작은 감정처럼 보이지만, 그대로 두면 다른 사람을 해치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커질 수 있다. 상대를 속이고 거짓말하여 해하려는 마음을 품는 순간, 이미 악한 영이 마음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먼저 내 영을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이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인가? 내 욕심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악한 마음이 들어온 것인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반대로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은 선행으로 축복하고, 많은 사람에게 덕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믿음 위에 덕을 세우고, 지식을 더하며, 절제와 인내와 경건, 형제 우애와 사랑을 갖추어야 한다. 지식만 있고 덕이 없다면, 말씀과 직분을 사람을 세우는 도구가 아니라 찌르는 칼처럼 사용할 수 있다. 지식은 칼자루와 같다. 선한 마음으로 잡으면 사람을 살리지만, 악한 마음으로 잡으면 사람을 상처 입힐 수 있다.
모서리를 깎아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참 신앙인은 모서리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공처럼 둥실둥실 부드러운 사람이어야 한다. 모서리가 있다는 것은 내 주장, 내 감정, 내 기준만 강하다는 뜻일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어디에서든 충돌하기 쉽고, 자신도 힘들고 주변 사람도 힘들게 한다.
우리는 각기 다른 모습과 성격, 장점과 부족함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므로 “왜 이런 사람이 우리에게 왔을까”라고 불평하기보다, 서로를 통해 내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 다듬어 가야 한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사람이 사람을 연단한다. 다만 서로를 찌르고 상처 내는 방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세우고 장점을 살려 주는 방식이어야 한다.
사람의 유전과 자기 생각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앞세워야 한다. 악행보다 선행을, 핍박보다 은혜를, 비판과 헤아림보다 사랑을, 저주보다 축복을 택해야 한다. 욕설보다 진리를 말하고, 정죄보다 용서를 실천하며, 높아지려 하기보다 낮아지는 길을 걸어야 한다. 야고보서 4장17절 말씀은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알려 준다. 선을 아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실행해야 한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자
빛은 어둠 속에서 더 잘 드러난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의 삶을 자세히 바라본다. 우리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 걸음과 행동까지도 누군가에게는 신앙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교회 안에서만 친절하고 거룩한 사람이 아니라,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빛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세상의 풍파와 핍박이 계속될 때에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같은 방식으로 미워하고 싸우며 악해져서는 안 된다.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을 악으로 이기려 하지 말고, 끝까지 선하고 정당한 길을 택함으로 그들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돌이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분이시며, 우리에게는 악을 품지 않고 선을 행할 책임이 있다.
천국은 거룩한 하나님과 천사들이 함께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그곳에 들어가 영원히 살기를 소망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겠는가? 밝은 미소, 아름다운 말, 착하고 자비로운 표현, 용서와 사랑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억지로 꾸며 내는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말씀으로 마음의 성분이 바뀔 때 나타나는 열매다.
성도의 참 신앙은 특별한 말이나 큰 업적으로만 증명되지 않는다. 날마다 내 안의 악한 마음을 버리고, 선을 택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 순종도 배우고, 믿음도 배우며,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기도로 선한 것을 구하고 실제로 행해야 한다.
우리는 천국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다. 직분이 사람을 높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직분에 맞는 인격과 삶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말씀을 많이 배운 사람답게, 하나님을 만난 사람답게,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살아가야 한다. 말씀을 전하는 입술 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행동, 삶 전체가 본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참 신앙인이라 인정받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멀리 있는 가족에게 건강과 안부를 전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걱정하며 기도를 한다. 그리고 영‧혼‧육을 위해 좋은 습관을 기르고 있다. 나의 삶을 나의 주인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평화를 전하고 있다. 우리같이 하자. 우리는 하나이니까.
“나는 배운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참 신앙은 말씀을 아는 데 있지 않고, 그 말씀을 믿고 지키는 데 있다. 종교가 하나님의 뜻과 가르침이라면, 신앙은 그 뜻을 깨달아 실제 삶에서 순종하는 것이다. 말씀을 들을 때는 “이렇게 살아야겠다” 다짐하지만,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이전의 생각과 습관으로 돌아가 버린다면 그 말씀은 아직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 것이다. 말씀은 적어 두는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보이는 스승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말씀이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 억울하게 하는 사람,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을 보면서 선한 마음을 지키기란 어렵다. 때로는 대적자를 향한 분노가 먼저 올라오고, 내가 직접 갚아 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러나 바로 그때 우리의 신앙 성분이 드러난다.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마음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용서와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예수님은 핍박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순간에도 자신을 해하는 이들을 저주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스데반집사도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 자신을 돌로 친 사람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아 달라고 간구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며, 우리가 닮아가야 할 참 신앙의 모습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세상 사람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를 어렵게 하는 사람에게도 선을 행하고, 축복하며, 용서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분을 닮아 가는 사람이다.
내 선택으로 드러나는 내 신앙의 모습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선을 선택할 수도 있고 악을 선택할 수도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갈 수도 있고 자기 생각과 욕심을 따라갈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강제로 모든 사람을 선하게 만드시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원하는 사랑과 순종을 원하신다.
부모가 자녀에게 억지로 인사를 시키고, 강압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하는 인사와 사랑해서 달려와 안기는 자녀 모습은 다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공포와 강요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기쁨으로 맞이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은 다른 누구의 선택도 아닌 나 자신의 선택이다.
천국과 지옥 역시 결국 각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왔는지에 따라 다다르게 되는 결과다.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 선과 악의 길을 알려 주신다. 그러나 그 길을 걷는 것은 사람 자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천국에 보내 주시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늘 내 말과 행동이 과연 천국에 합당한 모습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천국을 소망하는 마음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다. 빌립보서 2장13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 안에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좋은 집, 좋은 차, 돈과 성공이 인생의 가장 큰 소원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말씀을 통해 영생과 천국의 가치를 깨달았다면, 우리의 가치관은 달라져야 한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내 삶의 가장 큰 기준이 되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내 안의 성분을 살피자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어떤 생각과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가이다. 하나님께 속한 성분이 내 안에 더 많은지, 아니면 미움과 질투, 교만, 욕심과 같은 마귀의 성분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특히 하나님의 사명을 맡고 사람을 이끌거나 판단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더욱 자신을 살펴야 한다. 누군가가 칭찬받거나 사랑받는 모습을 볼 때 불편한 마음이 들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되는 것을 보며 시기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마음을 합리화하거나 숨기기보다, “왜 내가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가?”를 말씀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을 보아야 한다.
질투와 미움은 처음에는 작은 감정처럼 보이지만, 그대로 두면 다른 사람을 해치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커질 수 있다. 상대를 속이고 거짓말하여 해하려는 마음을 품는 순간, 이미 악한 영이 마음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먼저 내 영을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이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인가? 내 욕심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악한 마음이 들어온 것인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반대로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은 선행으로 축복하고, 많은 사람에게 덕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믿음 위에 덕을 세우고, 지식을 더하며, 절제와 인내와 경건, 형제 우애와 사랑을 갖추어야 한다. 지식만 있고 덕이 없다면, 말씀과 직분을 사람을 세우는 도구가 아니라 찌르는 칼처럼 사용할 수 있다. 지식은 칼자루와 같다. 선한 마음으로 잡으면 사람을 살리지만, 악한 마음으로 잡으면 사람을 상처 입힐 수 있다.
모서리를 깎아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참 신앙인은 모서리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공처럼 둥실둥실 부드러운 사람이어야 한다. 모서리가 있다는 것은 내 주장, 내 감정, 내 기준만 강하다는 뜻일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어디에서든 충돌하기 쉽고, 자신도 힘들고 주변 사람도 힘들게 한다.
우리는 각기 다른 모습과 성격, 장점과 부족함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므로 “왜 이런 사람이 우리에게 왔을까”라고 불평하기보다, 서로를 통해 내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 다듬어 가야 한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사람이 사람을 연단한다. 다만 서로를 찌르고 상처 내는 방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세우고 장점을 살려 주는 방식이어야 한다.
사람의 유전과 자기 생각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앞세워야 한다. 악행보다 선행을, 핍박보다 은혜를, 비판과 헤아림보다 사랑을, 저주보다 축복을 택해야 한다. 욕설보다 진리를 말하고, 정죄보다 용서를 실천하며, 높아지려 하기보다 낮아지는 길을 걸어야 한다. 야고보서 4장17절 말씀은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알려 준다. 선을 아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실행해야 한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자
빛은 어둠 속에서 더 잘 드러난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의 삶을 자세히 바라본다. 우리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 걸음과 행동까지도 누군가에게는 신앙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교회 안에서만 친절하고 거룩한 사람이 아니라,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빛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세상의 풍파와 핍박이 계속될 때에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같은 방식으로 미워하고 싸우며 악해져서는 안 된다.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을 악으로 이기려 하지 말고, 끝까지 선하고 정당한 길을 택함으로 그들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돌이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분이시며, 우리에게는 악을 품지 않고 선을 행할 책임이 있다.
천국은 거룩한 하나님과 천사들이 함께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그곳에 들어가 영원히 살기를 소망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겠는가? 밝은 미소, 아름다운 말, 착하고 자비로운 표현, 용서와 사랑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억지로 꾸며 내는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말씀으로 마음의 성분이 바뀔 때 나타나는 열매다.
성도의 참 신앙은 특별한 말이나 큰 업적으로만 증명되지 않는다. 날마다 내 안의 악한 마음을 버리고, 선을 택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 순종도 배우고, 믿음도 배우며,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기도로 선한 것을 구하고 실제로 행해야 한다.
우리는 천국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다. 직분이 사람을 높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직분에 맞는 인격과 삶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말씀을 많이 배운 사람답게, 하나님을 만난 사람답게,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살아가야 한다. 말씀을 전하는 입술 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행동, 삶 전체가 본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참 신앙인이라 인정받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멀리 있는 가족에게 건강과 안부를 전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걱정하며 기도를 한다. 그리고 영‧혼‧육을 위해 좋은 습관을 기르고 있다. 나의 삶을 나의 주인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평화를 전하고 있다. 우리같이 하자. 우리는 하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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